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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라이브

카난-25살

W.여름 꽃


 


생각한 게 모두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삭아삭 맛 좋은 소리를 내며 입 안에 녹아들던 수박을 삼키며 문득 든 생각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아무 생각 없이 살아온 내가 갑자기 왜 이런 생각이 들었던 걸까. 부모님의 뜻대로 지정해 준 학교를 가고 그저 사고 좀 치지 말고 조용히 학교나 다니라는 말에 조용히 학교만 다녔다. 물론-대학까지. 원하는 게 없었고 하고 싶은 게 없었다. 그저-놀러가라 하면 갈 곳도 없으면서 친구와 손을 잡고 작은 지방 방방곳곳을 쏘다녔고, 이제 공부 좀 해야 하지 않겠니 란 말에 재미도 없는 책을 보며 공책에 지렁이들을 끄적였을 뿐이었다.

 

 

그렇게 25.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목이 늘어난 파란색 반팔 티셔츠에 손을 타고 팔꿈치까지 흘러내리는 분홍 물을 보며 수박을 아삭거리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단 것이다.

 

 

25.

 

 

직장이 있고, 모아둔 돈이 있었다.

 

 

비록 주 1일인 휴일이지만, 월급을 제때 주고 사람을 괴롭히지도 않았다. 다만 단점을 뽑자면 친구들을 만나지 못 할 정도로 바쁘다는 점. 그 외에는 꽤나 괜찮은 직장에서 3년을 머물었다. 이제 4년만 더 있으면 대리가 되겠지. 그러면 월급이 오르고- 30이 되기 전에 독립을 할 수 있을까나.

 

 

으드득 입 안에서 씹히는 수박씨를 삼켜내며 든 의문에 이내 고개를 저었다. 대리여 봤자 지꼬리만한 월급으로 독립은 무슨.

 

 

그냥 부모님 죽고 나서 이 집을 내가 물려받으면 되는 걸까나.

 

 

방음은커녕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는 이곳을.

 

 

무심한 표정으로 슥 앙상한 생선뼈처럼 밑둥만이 남은 수박 껍질을 쟁반 위에 올려놓고서야 으으으-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잡생각 하지 말고..그냥 이렇게 흐르는 대로 살아가야지 뭐.

 

 

집 안임에도 불구하고 쟁반 옆에 놓아두었던 담배를 꺼내 한 가치를 입에 물었다. 그러고는 일으킨 몸에서는 우두둑 내가 고장 나고 있다는 소리를 알려주고, 슬리퍼를 신고 나간 밖에서 붙이는 불과 함께 들이마시는 습한 담배 연기는 이내 더위와 섞여 내 옷에 찌든 향이 베어들게 할 뿐이었다.

 

 

아아-

 

 

25. 이제야 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다니면서 남들 하는 땡땡이도 해보고, 교수가 부르는 출석. 한두 번 빠져도 나쁘지 않았을 텐데..너무 시키는 대로만 올곧게 살아온 건가 하는 막심한 후회만이 몰아쳐 들어왔다.

 

 

그래. 내가 너무 했네.

 

 

삼일 전 술 한 번 마시자며 환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던 친구가 떠올랐다. 만나지 못 한 지가 두 달 째. 고등학생 시절 손 꼭 잡고 우린 최고의 절친이라며 항상 웃던 좋은 친구였는데..

 

항상 어디든지 같이 가기를 원했었다. 대학교, 여행도, 직장도.

 

 

하지만, 성인이 된 지금에서야 모든 걸 함께 할 수가 없다고 깨우쳐 버렸고, 그런 상실감에 더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간혹 술을 마실 때마다 나오던 남자 과장이 난 누군지도 몰랐고, 그 사람 욕을 하면 그저 그렇구나란 호흥을 하며 소주가 1, 맥주가 3비율로 섞인 소맥을 홀짝였을 뿐이었다.

 

 

이게 멀어진다는 거구나.

 

 

그 흔한 작은 비밀조차도 공유하던 친구조차도 멀어지는 건 한 순간이었다. 내가 일을 할 때 친구들은 휴식을 취했고, 내가 휴식을 취할 때 친구들은 일을 했다.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시간. 날짜. 요일.

 

 

25.

 

 

지금에서야 처음으로 외톨이가 되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