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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소설 GL

[백합 소설]새벽 시리즈 맛보기, 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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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윤 서(무관심)


-이른 새벽-

이른 새벽, 늦은 밤이라기도 애매한 새벽 3시 35분 빈민가의 집 언두리는 듬뻑듬뻑 수저가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 주택 촌이라도 불리기도 하는 빈민촌은 말이 좋아야 주택 촌이지 지붕은 회색빛이고, 높은 언덕을 오를 때면 숨이 차오르는 이곳은 주택 촌보다는 빈민촌이란 말이 잘 어울렸다. 그리고 여기, 빈민촌은 낮이고 밤이고 조용한 날이 없는 이곳은, 사람이라고 조용할쏘냐. 아래 내리막길을 중간 쯤 내려가다 보면 창녀들이 모여 있는 곳이 있는 이곳은 새벽이라는 개념이 없다. 누군가에겐 불타는 밤, 어떤이에게는 느지막한 잠에 드는 저녁. 그리고 우리들에게 이 시간은 소금쟁이처럼 웅크리고 겨우 잠에 빠진 몸을 일으켜 일을 하러 나가는 시간이다.


‘쏴아아’

아, 또다.

옆집 단비네에서 들리는 물소리와 뭔가를 굽는 건지 맛 좋게 스며드는 기름내에 코를 킁킁 거리며 앉아 있던 몸에 기지개를 피며 뻐근한 두 눈을 끔뻑였다.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서 잠에 들지 못 한다. 수많은 작가들 사이에 이름 한 자 조차 알려지지 못 하는 무명작가의 삶은 이렇게 고달프다. 빈민가의 제일 꼭대기 달의 보듬음을 이렇게 가까이서 맞을 수 있는 곳. 이곳에서 하루하루를 살아오는 나란 사람은 밥 보다는 담배가 담배보다는 잠이 중요한 사람이다.


‘달그락달그락’

또.


오늘은 무슨 좋은 일이 있다고 저리도 소란을 피우는 걸까. 놋그릇과 자기 접시들이 부딪혀 맛있는 소음을 내는 옆집에 이제 막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던 현이 몸을 일으키며 쭉-다시 한 번 기지개를 폈다.


“배고프다.”

쩝. 입맛이 다셔진다.

전이라도 부치는 건지 계란과 기름 특유의 노릇한 기름 내음이 코를 자극하고 식욕을 자극해서 뱃고동이 고동고동 아주 요란을 떤다.


“단비야-”


그래서 이리 무례를 저질렀으니.

매일 밤낮 할 것 없이 찾아오던 집이 새벽이라고 다를쏘냐.

무례라고 할 것도 없을 터였지만, 식당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는 단비인 걸 아는지라. 새벽에는 대부분 찾아오려 하지 않는 현이는 오늘따라 유독 고픈 배에 ‘탕탕’ 단비의 집 대문을 두드렸다.


“어-”


그리고, 그런 내 부름에 당연하다는 듯 하는 일을 멈추고 문을 열어주는 너는 피곤하지도 않는지 특유의 보조개 달린 미소로 날 반긴다.


“배가고파서 찾아 왔우.”

“마침 부르려고 했는데, 잘 됐네. 일 하는 중이었지?”

“응, 이른 새벽부터 뭘 그리 자박거리냐-”

“이모가 남은 재료를 싸줬어. 상하기 전이라서 미리미리 요리 해 놓은 거지.”

“오-”

“요즘, 고전소설 쓰나 봐?”

“응? 어떻게 알았어?”

“말투가 현대 말투 같지는 않아서.”

“하하-그런가?”

“응, 거기 서 있지 말고 안에 들어와서 좀 먹고 가. 나도 아침 먹고 일 가야지.”

“참으로 일찍 가는구나.”

“그 말투 조금 오글거린다.”


물에 젖어 축축한 손을 허리 언저리에 닦으며 방안으로 현이를 이끄는 단비의 손길에 들고 있던 담배를 담 밖으로 던진 현이는 방이라곤 2개 밖에 없으면서, 하나는 손님용으로 만들어진 넓은 방안에 들어가 장판 위 두꺼운 솜 이불안으로 쏙 들어갔다.

여기서도 노릇노릇 맛있고 고소한 냄새가 풍긴다. 안 그래도 배가 고파 잠을 이루지도, 글을 쓰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이게 웬 떡이냐. 쩝쩝 절로 다셔지는 입맛에 빙글 미소를 지은 현이 이내 엉금엉금 기어가 부엌과 연결되어 있는 작은 문을 열었다.


“도와줄 거 있어?”

“안 그래도 부르려고 했는데, 이것 좀 들어줘.”

“야아-상다리 부러지겠다.”

“알면 얼른 좀 들어라, 상다리 부러지기 전에 내 팔이 부러지겠다.”

“아이코, 그럼 큰일나지.”


얼른 단비의 손에서 상다리를 잡아채 질질 방에서 제일 따뜻한 아랫목에 가져다 두니 그 좁은 문 사이로 아기자기한 머리통이 쏙 튀어나와 이내 방안으로 뽈뽈 기어 들어온다.


“으, 추워라.”

“얼른 와서 몸 좀 녹여.”

“응.”


피곤하지도 않은 건지, 여전히 밝은 얼굴과는 달리 얼음장 같은 네 손을 잡아끌어 후끈한 장판 안으로 손을 넣어주니 뭐가 그리 좋은지 참으로 싱글벙글 거리던 넌 이내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하얀 쌀밥 위에 수저를 푹 꽂으며 얼른 먹으라 타박을 한다. 네가 먼저 먹어야 내가 먹지.


“이거 먹어봐.”


살이 올라 통통한 고등어를 어찌 구웠는지 노릇하고도 맛 좋은 갈색을 띄고 바삭한 기름내음을 풍기는 걸 젓가락으로 뜯어 내 밥 위에 올려준 넌 뭘 그리 준비를 한 건지, 이것저것 썰어 구워낸 전까지 간장 종지에 살짝 찍어 내 앞 접시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또 싱글벙글. 네 밥그릇에는 손 한번 대지 않고선 나한테 얼른 먹으라며 이리도 타박을 한다.


“잘 먹겠습니다.”

“많이 먹어.”


진밥을 좋아하지 않는 날 위해 항상 물 조절을 신경 써서 밥을 짓는 단비는 진밥을 좋아한다.

하지만, 수저로 떠올린 밥알은 윤기가 자르르르 돌며, 고슬고슬한 게 고등어와 함께 입에 넣으니 쌀알이 오밀조밀하게도 흩어져 입 안에서 풀어지고 생선도 파삭 바삭하게도 익어 입 안에서 기름기를 뿜어내준다.

맛이 좋다.


“맛있어?”

“응.”


그리고 이런 내 모습에 수저를 들어 익다 못해 시큼하기까지 한 김치를 찢어 밥과 함께 먹는 넌.

내가 전을 집어 먹고, 생선의 가장자리 바삭한 부분을 ‘툭’ 뜯어 먹을 동안 베시시 웃으며 김치를 아작거릴 뿐이다.


“이것도 먹어.”


보다 못해 가장 맛있고도 통통한 부분의 생선살을 발라 밥 위에 올려주자 김치 국물로 인해 붉은 기가 언뜻 도는 하얀 자기 그릇 안에 있는 밥과 생선을 푹 떠먹는 넌 입을 작게 우물거리며 또 빙글 거린다. 빙글빙글


“맛있다.”

“그러게.”


그리고는 또 김치.

국민학교 때만 해도 김치가 싫다고 징징거리더니..

또 김치를 집어 들어 우물거리는 네 밥그릇 위에 얇게 펴내어 밀가루와 계란 물을 묻혀 지져낸 육전을 집어 올려줬다.


“나 돈 있어.”

“응?”

“고기 사줄 돈은 있다고. 그러니까 김치 좀 그만 먹어.”


항상 좋은 것만 나한테 주지 말고.

뒷말을 느릿하게 이어하며 네가 열심히 집어 먹던 김치 한 조각을 집어 입에 넣었다.
‘와삭’
한입 씹자마자 와삭하고 퍼지는 청량한 음과는 다르게 절로 찌푸려지는 미간에 고개를 숙여 밥을 한 입 푹 떠먹었다.

짜고, 시다.


“잘 먹었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마지막 김치까지 모조리 내 입에 집어넣고 나서야 젓가락을 손에서 놓은 내게 미지근한 보리차 한 잔을 건넨 너는 작은 부엌 문 사이로 몸을 들이밀고 이내 사라져 버린다.

설거지 정도는 내가 할 수 있을 터인데.

채 말을 꺼내기도 전에 사라져 ‘달그락달그락’ 퐁퐁 칠을 하는 넌 또 금세 나타나 손을 탈탈 털고 허리춤에 물기를 닦아낸다. 어느 순간 저런 버릇이 생긴 걸까.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어느 순간부터 너는 저런 버릇이 생겼다. 이른 새벽부터 밥을 챙겨 먹고 식당에 가서 재료를 다듬고, 늦은 저녁까지 손님을 맞다가, 설거지까지 끝낸 뒤에 피곤한 발걸음으로 이 높은 언덕을 돌아오는 너는 내 집안까지 들어와 방글방글 온순한 미소를 한 번 보여준 뒤에야 네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이른 새벽에 불러내어 막 지은 밥을 먹이고 설거지까지 끝낸 뒤에야 슥슥, 허리춤에 젖은 손을 닦는다. 그래서 내가 보는 네 상의는 한시도 마른 날이 없다.


“나, 갔다 올게.”

“응, 잘 다녀 와. 다치지 말고.”

“응!”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어둑한 새벽 길. 이제 막 4시 30분을 넘어가고 있는 이 이른 시간에 뭉툭한 목도리를 두르고 나와 함께 대문을 나와서야 방글방글 네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타박타박 내리막길을 내려간다.

아직 창녀촌이 운영을 할 시간일 터인데, 저러다 혹시 나쁜 사람에게 잡히지 않을까 걱정이 들지만, 차마 따라 내려갈 수가 없었다.

따라가면 네가 싫어할 거잖아.

나 보다는 한참이나 작은 네가 내리막길을 내려갈수록 더 작아 보인다. 난 이렇게나 달과 가까이 있는데, 넌 점점 어둠으로 사라지는구나.

버릇처럼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인 뒤 ‘후-’길게 내뱉은 연기의 잔해 사이로 이제는 새끼손톱보다 작은 너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런 너의 움직임을 꿈뻑이며 이 작은 눈 안에 모든 걸 담다, 네가 사라진 뒤에야 뒤를 돌아 칠이 벗겨진 파란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새벽이 길다.

하지만 우린 이제 시작이다.

‘달그락달그락’

아, 앞집 장 씨 아저씨도 이제 하루를 시작하려나 보다. 아직 해도 뜨지 않았는데 말이다.

이제 2시간 20여분 후면 해가 떠오를 이른 새벽, 4시 34분 빈민가의 집 언두리는 듬뻑듬뻑 수저가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새벽 시리즈의 3편까지는 노조에리 팬픽으로 올렸으나, 글 특유의 토속적 분위기로 인해, 한국 이름으로 수정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