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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드림

[사요히나]별의 다이어리-9

w.여름 꽃

 

 

주인니임..”

 

 

 

달래준 시간이 꽤 된 것 같음에도 두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아이의 모습에 품에 안겨있는 아이를 들어올렸다. 빠질 살이 없음에도 최근에 제대로 된 영양소들을 섭취하지 못해서 그런지, 더 가벼워진 무게에 왼쪽 언저리에 있는 심장 한 곳이 싸하게 추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뭔지는 몰라도, 그 느낌이 아주 좋지는 않았다는 건 확실했다.

 

 

 

너희들은 이만 돌아가.”

 

 

 

“..?”

 

 

 

있어봤자 도움도 안 되고, 아코도 좀 쉬어야지. 치료도 받고..”

 

 

 

..그렇지..”

 

 

 

얼른 가.”

 

 

 

“..,..그래. 나중에 보자 사요. 히나 너도.”

 

 

 

그래.”

 

 

 

리사의 말에 붉어진 눈가를 끔뻑이던 아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없는 사이에 그새 정이라도 든 건지, 이별을 하는 아이의 행동이 아까보단 불편해 보이진 않았다.

 

 

 

아코를 안아 올린 리사와 방을 나와 복도에서 리사는 밖으로. 나는, 아이가 있을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방이 꽤 지저분할 텐데..

 

 

 

평범한 인간들처럼 치고 박고 싸운 게 아니고 벽이 부셔질 정도로 난잡하게 몸을 굴린 것도 있었지만, 힘이 약한 편도 아니기에. 아무리 조심히 싸웠다고 해도 벽 하나는 무너졌을 게 분명했지만..

 

 

 

..이럴 거면 싸우지 말 걸..

 

 

 

터벅터벅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에 있게 하기는 싫지만 아이를 돌봐줄 곳이 없다. 그렇다고 내가 인맥이 넓은 편도 아니니..

 

 

 

“....”

 

 

 

피곤한지 눈을 감고 있는 아이를 흘깃 바라보다 금세 도착한 방의 문을 열며 들어가니, 과연 아버지는 아버지구나. 애초에 무슨 주술을 쓰신 건지 아까와는 달리 깨끗한 방의 모습에 맥이 탁 빠져버렸다.

 

 

 

움푹 패여 파편이 튀었던 벽들과 반쯤 내려앉은 천장은 어디 간 건지, 처음 이 방에 들어왔던 날처럼 한산하고 냉랭한 방의 모습을 둘러보며 아이를 바닥에 내려놨다.

 

 

 

“...”

 

 

 

차가운 돌바닥에 내려놓자마자 소름이 오소소 돋은 아이의 허벅지를 바라보다 슬며시 아이를 끌어안았다.

 

 

 

인간이 아니여서 체온이 아주 낮은 편인 내가 별 도움은 되지 않겠지만. 울렁거리는 이 오묘한 마음이 아이에게도 전달되길 바라며 꼬옥, 아주 꼬옥 아이를 끌어안았다.

 

 

 

주인님..”

 

 

 

“...”

 

 

 

뜨거운 아이의 체온은 꼭 인간의 체온 같았다. 흔히 34-37도의 기본적인 인간들의 체온처럼 말이다.

 

 

 

히나.”

 

 

 

“....”

 

 

 

“...”

 

 

 

“...”

 

 

 

“..널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도통 욕심이 나지가 않는다. 그러면서도 욕심이 난다. 너의 피와 너를 소유하고 싶은 욕구가 마음 깊숙이 일렁이면서도 널 이렇게 차가운 곳에 평생 놔두게 할 수가 없다는 머릿속 욕구와 육체적인 욕구가 마구 부딪혀서 정신이 너무 산만해.

 

 

 

만약 네가 첫째였다면, 우리 가문의 장녀였다면 이런 감정이 들지가 않았을까? 도통 어디서부터 잘못 된 건지 알 수가 없어. 그래서 더 복잡하고 더 아픈 기분이다.

 

 

 

뱀파이어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은 기쁨, 고통, 절망 이 세 가지 뿐일 텐데. 네가 너무 안쓰럽고 너무..너무..

 

 

 

...

 

 

 

너무 애틋하단 말이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니 도대체.

 

 

 

“...”

 

 

 

“...”

 

 

 

내가 정말로 인간이었다면..눈물이 나왔을 것 같아.

 

 

 

하다못해 나도 너처럼 울 수가 있다면. 내 감정을 전부 표출해 버렸을 것 같다.

 

 

 

도망갈래?”

 

 

 

“..?”

 

 

 

나랑 같이.”

 

 

 

한마디씩 말을 내뱉을 때마다 울렁거리는 마음에 속이 상해 눈을 감은 사요가 다시금 천천히 눈을 뜨며 하다만 말을 이어 내뱉었다.

 

 

 

도망가자 히나.”

 

 

 

고작. 이 한 마디 내뱉기가 이렇게 어렵다니. 나란 녀석도 엄청난 겁쟁이인가 보다.  

 

 

 

“..왜요?”

 

 

 

“...갈 거니?”

 

 

 

“...”

 

 

 

내가 가자고 하면, 갈 거니..?”

 

 

 

“....”

 

 

 

그래.”

 

 

 

그거면 됐어. 충분해.

 

 

 

스르릉 느릿하게 다가오는 구속구들에 얼른 아이를 일으켜 안고 방을 나섰다.

 

 

 

그래, 우리 가보자. 천계든 도깨비 동굴이든 어디든 가보자. 이렇게 썩지는 말자 우리.

 

 

 

차가웠던 지하와는 달리 방으로 돌아오니 나른한 온도가 확 피부에 와 닿았다. 아이에는 그저 서늘한 온도겠지만. 그래도 추위는 여전할 것이기에 침대로 다가가 아이에게 폭 이불을 덮어줬다.

 

 

 

잠깐 쉬고 있어.”

 

 

 

“...”

 

 

 

배게까지 목 뒤에 평평하게 넣어주고 나서야 아이의 눈을 감기고 이리저리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우선 어디부터 가야할까..어딜 가든 들키는 건 뻔하다. 그래도..시간을 벌 수 있을 만한 곳이.

 

 

...

 

 

 

.

 

 

 

아코의 저택.

 

 

 

인간을 좋아하는 녀석이라 인간 세계 곳곳에 저택을 숨겨둔 걸로 알고 있는데. 아마 도움을 요청하면 도와주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얼른 편지를 적기 시작했다.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전보를 받으면 금방 돌아올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치고 박고 격하게 싸운 상대라도 함께 해 온 세월이 있으니 툴툴거리면서도 금방 들어줄 게 뻔할 터였다. 더군다나 아코라면 충분히 나를 도와줄 다정한 아이니.

 

 

 

잘 부탁한다.”

 

 

 

대충 휘갈겨 쓴 단어를 접어 창문 옆에 놓여 진 철창에서 하얀 비둘기 한 마리를 꺼내 쪽지를 묶고 비둘기를 날려 보냈다.

 

 

 

똑똑한 아이니, 잘 돌아오겠지.

 

 

 

그리고는 다시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 동안 모아온 금화들이 담겨진 보라색 주머니와 혹시 모르니 모아뒀던 약초와 포션들 그리고 아이와 내 냄새를 숨겨 줄 향수와 주술이 걸린 가루들까지 챙긴 뒤에야 꾀죄죄한 옷을 벗고 하얀색 니트와 검정 슬렉스로 옷을 갈아입었다. 평소에 즐겨 신는 검정 로퍼을 그대로 신고 난 뒤에야 회색 후드티와 검정색 진을 들고 침대로 걸어가니, 많이 피곤했던 건지 고른 숨을 내쉬며 잠들어 있는 아이의 모습에 옷을 이불 위 한 켠에 올려놨다.

 

 

 

일어나면 갈아입겠지.

 

 

 

 

-

 

 

 

아이들은 예상대로 금방 모습을 드러냈다. 반쯤 정신을 차린 듯 편안한 표정으로 자고 있는 아코를 들쳐 매고 있는 리사는 정신없이 짐을 챙기고 있는 내 모습에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는.

 

 

 

“..그래서.”

 

 

 

“...”

 

 

 

도망을 가겠다는 거야?”

 

 

 

.”

 

 

 

만약 걸리면 어떻게 하려고?”

 

 

 

“...”

 

 

 

네 목숨은 그렇다 치지만, 저 아이는 발견된 즉시 사살이야!”

 

 

 

안 걸리면 되.”

 

 

 

“..,

 

 

 

그러니까 좀 도와줘.”

 

 

 

“...”

 

 

 

너희들이라면 100년 정도는 숨겨줄 수 있잖아.”

 

 

 

숨겨주는 게 문제가 아니야.”

 

 

 

안 걸릴 자신도 있잖아.”

 

 

 

“..정말 너는..”

 

 

 

“...”

 

 

 

평소에는 조용하면서 사고는 항상 다이나믹하게 치는 구나.”

 

 

 

도와 줄 거지?”

 

 

 

당연하지. 친구 좋다는 게 뭐겠어. 더군다나-아코도 분명 도와줄 테니까.”

 

 

 

고마워.”

 

 

 

고마우면 히나나 잘 챙겨. 너 때문에 괜한 죄책감 들게 하지 말고.”

 

 

 

..”

 

 

 

여기서 느릿하게 깔짝거리기만 하면 걸리는 건 한 순간 이니까. 기본적인 정리만 하고 출발하자.”

 

 

 

, 어디로 갈 건데?”

 

 

 

인간 세계로 가야지. 생김새도 그나마 비슷하고, 무리지어 사는 것도 비슷하니까 찾기도 조금 힘들 거야.”

 

 

 

인간 세계 어디?”

 

 

 

내가 챙긴 짐을 다시금 확인해본다는 취재로 가방을 열어 뒤적거리던 아코가 날 보며 씩 미소 지었다.

 

 

 

한국.”

 

 

 

한국?”

 

 

 

, 한국으로 가자. 거기서 잠깐 동안 숨어 있다가 회사 들어가서 일반인들 사이에서 숨어 있어.”

 

 

 

회사?”

 

 

 

, 일반인들 사이에 숨어서 냄새가 섞이면 찾기도 더 힘들 테니까. 일단은 그래야지.”

 

 

 

“..하지만-아침은 조금 힘들잖아.”

 

 

 

- 너 아직도 아침이 힘든 거야?”

 

 

 

그러는 너는

 

 

 

너도 생각보다 약골이구나.”

 

 

 

?”

 

 

 

나도 아침이 힘겨운 편이기는 하지만..그래도 못 참을 정도는 아닌데..아직도 몇 세기 전의 뱀파이어처럼 태양에 허덕이는 애가 있다니.”

 

 

 

“...”

 

 

 

그러면 조금 힘들긴 하겠구나. 하긴..지상의 태양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지저처럼 약하다거나 어둡지도 않으니..배는 더 힘들겠어. 한 몇 년 동안은 지저가 그리울 수도? 그리고-요즘 위쪽에서 인공 태양을 없앤다는 이야기도 있더라.”

 

 

 

“..?”

 

 

 

 

그래야 다스리기 쉽잖아. 도망가지도 않고. 누구처럼.”

 

 

 

“...”

 

 

 

원래 우리가 인간들과의 싸움에서 진 거야. 밀리고 밀려서 도망친 곳이 지하이고. 그게 수치스러워서 태양을 피해서 지하로 왔다는 그런 시답지도 않은 글을 쓴 거고.”

 

 

 

“...”

 

 

 

그게 1000년이나 지났으니, 믿는 사람도 꽤 많을 걸?”

 

 

 

너는 어떻게 알았는데?”

 

 

 

나야, 워낙 자유분방하잖아. 돌아다닌 세계도 많고. 구석구석 흩어져 있는 자료들도 모아서 읽어 봤고. 무엇보다 원로들만 드나들 수 있는 서재에 몰래 들어갔다가 왔지.”

 

 

 

언제?”

 

 

 

“....20년 전에?”

 

 

 

배짱도 좋구나.”

 

 

 

그거 빼면 시체인 걸.”

 

 

 

..”

 

 

 

이제 슬슬 출발해야지. 히나 좀 깨워봐.”

 

 

 

알았어.”

 

 

 

그건 그렇고 포션들은 기가 막히게 잘 챙겨뒀다? 냄새 방지 포션도 아주 수두룩 하구만.”

 

 

 

이왕 도망칠 거 제대로 치는 게 낫지. 히나, 일어나렴.

 

 

 

흐음..너의 아버지는 네가 이런 포션들 가지고 있다는 거 알고는 있어?”

 

 

 

“..우리 아버지는 내가 전투보다는 주술에 좀 더 해박하다는 걸 알지도 못 할 걸.”

 

 

 

그걸 무관심하다고 하는 거지. 자기 야망만 키워서 그 바램을 자식에게 넘기고 말이

.”

 

 

 

“..히나

 

 

 

아코, 너도 일어나!!”

 

 

 

“...”

 

 

 

으음..주인니임..”

 

 

 

얼른 이거 입어, 이제 나가야지.”

 

 

 

아코오!!”

 

 

 

“...”

 

 

 

, 짜증나.”

 

 

 

조곤조곤 속삭이는 듯 한 사나의 목소리에도 잘만 일어나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는 누구와는 다르게 딱딱한 바닥에서 눈 한 번 안 뜨고 잘 주무시고 있는 저분은 도통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

 

 

 

저런 애랑 내가 10년 넘게 친구를 했다니. 그런 자신이 조금은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던 리사였다.

 

 

 

 

 

 

 

 

이번 편 부터가 작년 12월 달 부터 적기 시작한 거에요. 전 편들보다는 조금 읽기 수월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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