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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드림

[사요히나]별의 다이어리-10

w.여름 꽃

 

 

 

 

흔들어도 도통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아코의 모습에 짐까지 다 챙기고 멀뚱멀뚱 자신을 바라보는 두 명의 눈빛이 느껴진 리사는 탁자위에 올려 진 고급진편에 속하는 까무꼬냑을 들어 아코의 머리로 내리쳤다. 사실, 그게 비싼 거라는 걸 더군다나 자신이 좋아하는 술인 걸 알아챘을 때는 이미 챙강이라는 날카로운 소음을 내며 아코의 머리위에서 파편으로 변한 뒤였다.

 

 

 

!”

 

 

 

!!”

 

 

 

“..저 비싼 걸..”

 

 

 

“.., 젠장!!”

 

 

 

, 너 뭐야!”

 

 

 

너 때문에 바닥에 흐르는 이 술은 어떻게 할 거야! 사요가 선물해 준 건대!”

 

 

 

“..선물한 적 없는데..”

 

 

 

“..,괜찮아요?”

 

 

 

비명을 지른 건 히나, 머리를 움켜쥐고 바닥을 구르며 소음을 내는 건 아코, 낮게 읊조린 건 사요, 그리고 머리를 헝클며 욕을 내뱉는 리사. 넓은 방이 순간 왁작 지껄해졌지만, 화를 내는 아코의 입에 회복용 포션을 쑤셔 넣는 사요의 행동으로 인해 조용해졌다.

 

 

 

씨이..갑자기 이게 뭐하는 짓이에요, 옷이 더러워 졌잖아요..!”

 

 

 

닥치고 이걸로 갈아입어, 지금 당장 고블린 세계로 떠날 거니까.”

 

 

 

“..? 갑자기 왠 고블린?”

 

 

 

우리, 도망갈 거야. 여기서 영원히.”

 

 

 

“..?”

 

 

 

말 그대로야, 시간이 없으니까 빨리 제복으로 갈아입고 나가자.”

 

 

 

“..나는 왜요? 아니, 그보다 난 도통 이해가 안 가는데?”

 

 

 

그건..가면서 이야기 해줄 테니까 잔말 말고 빨리.”

 

 

 

“..항상 나만 모르지..”

 

 

 

머리에서 흘러내린 피와 꼬냑을 슥 닦아낸 아코가 리사가 건넨 검은색 제복으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훌렁훌렁 옷을 벗어내면서도 부끄러움 따윈 없다는 듯 내내 툴툴거리기만 한다.

 

 

 

, 머리에서 술 냄새 나잖아!!!

 

 

 

그리고 너희는, 이거 마셔. 미니 포션이야.”

 

 

 

“..네가 만든 것처럼 말하는구나.”

 

 

 

네가 만들었어도, 지금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나잖아.”

 

 

 

“...”

 

 

 

, 얼른 마셔, 너도.”

 

 

 

..!”

 

 

 

옷 안에는 부적을 넣어놨으니까 이걸 마시면 옷도 같이 줄어들 거야.”

 

 

 

그건 알고 있어.”

 

 

 

파란색 포션의 마개를 따 꼴깍꼭깍 들이키는 사요의 모습을 흘깃거리던 히나도 포션의 입구에 입을 대고 파란색 액체를 마시기 시작했다.

 

 

 

맛없어 보이는 색깔과는 달리 은근 달달하기도 하면서 삼킬 때마다 목에서 청량감이 느껴졌다.

 

 

 

, 맛있고 시원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양이 적다는 거.

 

 

 

간에 기별도 안 갈만한 양에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시던 히나는 자신의 시야가 점점 넓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딱 골반 언저리 정도에 왔던 탁상은 목을 높게 치켜 올려야 볼 수가 있었고,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리사의 신발은 자신이 키에 비해 2배하고도 반은 높아보였다.

 

 

 

..이래서 미니포션이구나.

 

 

 

우와아..”

 

 

 

어때, 신기하지?”

 

 

 

!!”

 

 

 

올려다보면 목 아프니까 자 이리오렴.”

 

 

 

“...”

 

 

 

다리를 쭈그려 히나와 사요가 올라가기 쉽게 손바닥을 바닥에 놔준 리사는 두 명이 손바닥에 올라타자 몸을 일으켰다.

 

 

 

, 이제 가자.”

 

 

 

.”

 

 

 

같이 가요-”

 

 

 

끈이 긴 워커를 발목의 틈사이로 대충 구겨 넣은 아코가 문을 열고 나가는 리사의 뒤를 졸졸 쫒아가 옆에 나란히 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근데,,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 나중에 알려준다니까.”

 

 

 

“....”

 

 

 

계속되는 아코의 칭얼거림에도 그저 귀를 후비며 긴 복도를 걸어가던 리사가 우뚝 걸음을 멈췄다.

 

 

 

“..안녕하세요.”

 

 

 

그래, 오랜만이구나. 리사양. 아코양도.”

 

 

 

오랜만이에요 백작님.”

 

 

 

사요를 만나고 오는 길이니?”

 

 

 

, 이번에 한, 50년 정도 탐방 겸, 여행을 갔다 오려고요.”

 

 

 

아코랑?”

 

 

 

, 그래서 친구들을 한 동안 못 보니까, 인사나 하러 왔지요. 방에 가니까 없었지만..?”

 

 

 

그래? 지하라도 내려 갔나보구나.”

 

 

 

, 안 그래도 얘기 들었어요. 사요도 벌써 그럴 나이가 되었네요.”

 

 

 

허허, 벌써라니. 꽤 늦은 편이지.”

 

 

 

흐음..그런가요? 그래도 못 봐서 아쉽군요..”

 

 

 

“50년이면 그리 긴 시간은 아니니, 금방 볼 수 있을 거다. 너희들이 온 건 내가 나중에 사요에게 잘 말해주마.”

 

 

 

,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면서 선물도 사올게요!”

 

 

 

허허허, 그래그래. 잘들 가거라.”

 

 

 

.”

 

 

 

사요와는 다른 나른한 눈매가 호선을 그리며 미소를 짓다 금방 무뚝뚝하게 변한 남자가 이내 리사와 아코의 옆을 지나쳐 가자, 다급하게 왼쪽 포켓에 들어간 사요와 히나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하마터면 들킬 뻔 했어.”

 

 

 

그러게..”

 

 

 

냄새 없애는 가루를 미리 뿌려놔서 다행이야.”

 

 

 

, 이제 경비원들만 지나가면 끝이니까.”

 

 

 

방금 전까지 느긋하던 걸음과는 달리 발걸음을 빨리하던 리사는 이내 정원까지 넓게 깔려있는 사요네 저택을 나오자 숨을 폭 내쉬며 고블린과 뱀파이어의 사이를 막고 있는 경계선까지의 거리를 가늠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일이 많은 사요네 가문답게 경계들과 굉장히 가까운 거리에 저택이 지어져 있어, 고블린 마을 경계선 까지는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니었다. 저 멀리서도 언뜻 형태가 보이니 빠른 걸음으로 걸어간다면 약, 10분 정도가 걸릴 터였다.

 

 

 

, 그래서 이제 어떻게 된 상황이에요. ho..꼬맹이는 뭐고.”

 

 

 

-”

 

 

 

포켓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고 신기한 듯 주위를 둘러보는 히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hope라는 단어를 꺼내려 하다가 자신을 노려보는 사요의 눈초리에 입가를 우물거리며 적절한 단어를 내뱉으려 생각하던 아코가 이내 꼬맹이라는 단어를 내뱉자, 무심하게 고개를 돌려 히나의 모습을 바라보는 사요이다.

 

 

 

..아주 그냥 푹 빠지셨네. 눈 꼴 사납게.

 

 

 

그리고 그런 사요의 모습이 아주 마음에 안 드는 아코가 입을 우물거렸다.

 

 

 

평생 갇혀 사는 건 너무하잖아. 길면 500년이고 짧으면 300년인데..”

 

 

 

“..누가요?”

 

 

 

히나 말이야.”

 

 

 

“..그래서 도망가는 거라고요?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고작 그런 이유가 아니니까 이러는 거지.”

 

 

 

“..,..그래서 고블린 세계로 도망가자는 거죠?”

 

 

 

아니, 우리를 최대한 숨겨야지. 추적해도 오래 걸릴 수 있도록 흔적을 남기는 거야. 찾으면 찾을수록 그 흔적들도 사라질 거지만.”

 

 

 

리사 언니가..제법 머리 좀 썼네요.”

 

 

 

내가 원래 머리가 좀 좋잖니?”

 

 

 

그래서 내가 도움을 요청한 거고.”

 

 

 

, 젊은 것들보다는 연륜이 있는 편이니.”

 

 

 

“..그쪽도 많이 쳐줘도 50살이거든요?”

 

 

 

“10대인 너희들 보다는 훨씬 나은 거란다?”

 

 

 

“..나이 먹어서 좋겠수다.”

 

 

 

, 비꼬지 말고 잘 들어봐. 우린 고블린 마을을 지나서 천계로 갈 거야. 천계 다음엔 늑대인간들이 모여 사는 곳. 그 다음으론 지옥사막.”

 

 

 

그게 끝..?”

 

 

 

아니, 마지막으로 서큐버스 마을까지 간 다음에 인간 세계로 갈 거야. 한국으로.”

 

 

 

“..참 많이도 가네. 그래서 총 몇 년이나 걸리는 거에요?”

 

 

 

고블린 마을은 길어야 일주일.”

 

 

 

“..참 빠르네.”

 

 

 

천계는 한 달, 늑대마을은 2, 지옥사막은 3, 서큐버스 마을은 3, 한국은 아마..80..정도?”

 

 

 

“..잠깐, 고블린은 그렇다 처도 왜 천계는 한 달이야?”

 

 

 

그곳은 세분화 되어 있는 곳이야. 한 바퀴를 다 돌고 갈 거니까. 사실..이것도 굉장히 빠른 스케줄들이지. 우린 괜찮을 테지만..”

 

 

 

이 아이가 잘 따라올 지가 문제이지.

 

 

 

리사의 말을 귀담아 들으면서도 얼굴엔 물음표를 가득 달고 있는 히나의 모습에 안쓰럽다는 표정을 짓던 리사가 경계선 앞을 막아서고 있는 경비들의 모습에 포켓에 들어가 있던 히나와 사요를 제복 코트의 주머니에 넣은 뒤 신분증과 통행증을 꺼내 들었다.

 

 

 

~”

 

 

 

“.., 리사 님. 오랜만이네요.”

 

 

 

그러게, 오랜만이야. 일은 할 만해?”

 

 

 

“..뭐 늘 지루하죠..지나가는 뱀파이어들이 많아도, 늘 이렇게 서 있기만 하니까.”

 

 

 

“..왜 난 아는 척을 안 하는 거니?”

 

 

 

아이쿠..아코 님도 계셨군요!! 제가 리사 님을 너무 보고 싶어 했더니!!! 리사 님만 보여서..죄송합니다!!”

 

 

 

“..아주 하트가 날라 다니는구만.”

 

 

 

마음 같아서는 다 집어치우고 저택으로 돌아가 리사가 가져다 준 혈액 팩 중 제일 달달한 O형을 꺼내 마시며 침대를 뒹굴 거리고 싶은 아코는 눈썹을 삐죽거리며 통행증을 꺼내 들었다.

 

 

 

짐 검사는, 리사 님은..자주 다니시는 길이시니 빼 드리겠습니다. 아코 님은 이쪽으로..”

 

 

 

“..뭐야? 나는 왜 검사해?”

 

 

 

리사 님은 항상 통행증 한 장이랑 금화만 챙겨 다니시거든요. 50년 동안. 하지만 아코 님은 이제 막 10대 후반이 되셨으니, 여행길을 잘 모르셔서 짐을 많이 챙기셨잖습니까. 그러니 위험물이 있을까봐, 그냥 예의상 하는 검사니까 언짢아하지 마세요.”

 

 

 

“.., 짜증나.”

 

 

 

150년이 넘게 경비를 하고 있는 만큼 요령 있게 아코를 타이른 경비는 아코가 들고 있는 가방 안에 담겨 있는 여러 가지 포션과 여벌의 옷, 금화가 담겨 있는 보라색 주머니까지 전부 확인 해 준 뒤에야 위험 물질이 발라진 철창을 열며 아코와 사요를 고블린 경계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즐거운 여행 되십시오.”

 

 

 

그래, 나중에 봐-”

 

 

 

어쩌면 평생 못 볼 수도 있겠지만.

 

 

 

뒤에 말을 삼키며 인사를 한 리사가 여전히 투덜거리는 아코를 잡아끌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뱀파이어 세계를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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