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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드림

[사요히나]별의 다이어리-11

w.여름 꽃

 

 

 

약의 효과는 1시간, 30여분 후에 평소와 같은 크기로 돌아온 몸이 신기한지 몸을 이리저리 살피던 아이는 앞서 걷는 리사와 아코의 뒤를 따르던 내가 결국 손을 잡아끌자 그때서야 정신을 차리고는 나를 졸졸 따라오기 시작했다. 어느 샌가 나와 엇비슷해진 키로 내 손을 조물 거리며 걷는 아이의 모습이 비록, 도망자의 신세로 전략했지만, 첫 여행. 그 설렘을 보여주는 것 같아 참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음 언저리는 잡힐까 겁을 먹어 불안함이 가득하지만 그에 비해 순수함 그대로 기쁨을 머금은 아이의 모습을 보는 내 기분은 눈에 꽃가루라도 들어간 것처럼 꼭 간지러움을 머금은 기분이었다.

 

 

 

청개구리 같은 심보라고 하는 게 맞으려나.

 

 

 

그리고, 이런 개구쟁이 같은 내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건지, 삭막하기로 유명한 고블린 마을의 흙바람이 절벽을 타고 우리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으아..”

 

 

 

4살 때 혜진이를 따라 몇 번 와본 적이 있는 곳이라 그렇게 놀라지 않았던 우리와는 다르게, 처음으로 흙바람을 맞아본 아이가 눈을 부비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이내 다시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모습이 퍽 귀여워 보여 픽 웃음이 나왔다.

 

 

 

이리 와.”

 

 

 

코에 흙먼지라도 들어간 건지 킁킁 거리는 모습에 항상 여분으로 챙겨놓는 하얀 손수건을 꺼내 코를 슥슥 닦아준 뒤 후드티의 모자를 폭 덮어줬다.

 

 

 

이러면 괜찮을 거야.”

 

 

 

조막만한 얼굴이 회색 후드티에 파묻혀 있는 모습이 제법 귀여워 보여 작게 미소를 지어주니 옅게 홍조를 띠는 아이의 모습에 천천히 오른 손을 내밀었다.

 

 

 

“...”

 

 

 

손잡고 싶어서 그래.”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잖아.

 

 

 

굳이 붙일 필요도 없는 뒷말을 붙이며 나를 바라보는 아이를 묵묵히 기다려줬다. 그냥, 인간 세계에서 손을 잡고 걷는 사람들을 보았던 것처럼 나도 아이와 손을 잡고, 보드라운 아이의 살결을 만지고 싶은 흑심도 없잖아 있었지만, 항상 심술이 많은 고블린이 언제 나타나 돌덩이를 던질지도 모르니까 위험한 마음이 조금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런 내 행동에 조용히 하얗고 예쁜 손을 겹치는 아이의 손을 꽈악 깍지 낀 뒤에야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벌써, 피곤한 기분이야.”

 

 

 

너무 설치고 다녀서 그래.”

 

 

 

내가 뭘요?”

 

 

 

입이 너무 설치고 다녀. 아까부터 한시도 입을 안 다물고 있잖아.”

 

 

 

심심하니까 그러죠오, 심심하니까-”

 

 

 

우리는 안 심심해.”

 

 

 

..너무해..”

 

 

 

, 히나는 어때?”

 

 

 

“..?”

 

 

 

다리는 안 아프니? 아직 갈 길이 멀어서..힘들면 업어줄 테니까, 말해야 해. 알겠지?”

 

 

 

, 알겠어요. 아직은 괜찮은 걸요?”

 

 

 

그래? 그러면 다행이지만..”

 

 

 

뒷말을 흐리며 걸음을 옮기는 리사의 옆에서 툴툴거리던 아코가 흘긋, 뒤를 돌아보더니 푹 한숨을 내쉬고 리사를 따라 걸음을 옮긴다.

 

 

 

첫 여행, 더군다나 아직 어린 아이에게는 이 여행길이 쉽지 않을 거란 걸 우리 모두 알고 있기에,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다. 지금 이렇게 걷고 있는 속도도 아이에게는 많이 버거울 터였다.

 

 

 

인간이 우리를 따라오려면 거의 뛰다시피 해야 할 터인데, 인간의 체력 보다 좋은 편이긴 하겠지만, 우리보다는 한참 아래인 아이가 우리를 따라 행동하려면 분명 많은 힘이 들 게 분명했다.

 

 

 

벌써부터 다리에 힘이 풀리는지 비틀대는 게 눈에 보이는데도, 멈추면 버림을 받을 거라고 생각이라도 하는 건지, 힘든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하는 아이의 모습에 절로 속이 상해 꾹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아이가 말하지 않으면 도와줄 수가 없다. 포션도 쉽게 줄 수가 없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냥 평범한 액체겠지만, 미니 포션은 큰 몸을 작아지게 만드는 만큼 꽤 많은 체력이 소모되는 편이다. 그렇기에 그저 이렇게 손을 잡아주는 수밖에 없다.

 

 

 

우리 뱀파이어는, 도움을 청하기 전까지 도와주지 않는다. 그게 우리의 철칙이니까.

 

 

 

 

-

 

 

 

 

다행히 아직까지는 심술 많은 고블린들을 마주치지 않았다. 가끔 여행을 가다가 장난 끼나 심술이 많은 고블린들을 마주치면 금화나 포션을 도둑맞기도 하는데, 그러면 여행길이 더 지체되기도 해서, 굉장히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많았다. 그랬기에, 지금처럼 늦은 저녁이 되었음에도 쉽게 잠들지 못하고 보초를 서야 하는데 불을 지피자마자 많이 힘들었는지 다리를 쭉 피며 스트레칭을 한 뒤 나무에 기대는 내 허벅지를 베고 잠이 든 아이의 모습에 난 보초를 면제 받았다.

 

 

 

아마, 보초를 서게 되면 주위를 돌아다니기도 해야 하고, 신경을 많이 써야하는 부분이라 아이가 깰 수도 있다는 게 이유라면 이유였다.

 

 

 

피곤했나봐요.”

 

 

 

그러게..”

 

 

 

새액새액 청녹색의 머리를 흩트리며 잠이 든 아이의 매끄러운 머리를 귓가로 넘겨주다 쩍 하품을 내뱉으며 말을 하는 아코의 모습에, 주술을 걸어 작아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코끼리도 들어 갈 정도로 많은 물건을 담을 수 있는 가방에서 담요 두 개를 꺼내 아코에게 건네자 하나는 돌돌 말아 베개로 쓰고, 하나는 익숙하게 몸에 덮어 눈을 감는 모습이 고맙기도 하고 제법 대견해 보여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다, 몸을 움찔 거리는 아이로 인해 반쯤 들려 있던 허리를 뒤편에 있는 나무에 편하게 기댔다.

 

 

 

너도 담요 줄까?”

 

 

 

아니, 난 됐어. 나 말고 히나한테 덮어 줘, 몸도 약한 아인데, 감기 걸리면 큰일 난다.”

 

 

 

누가 보면 네가 언닌 줄 알겠어.”

 

 

 

내가 너희들 중에선 제일 언니야.”

 

 

 

언니가 아니라, 할머니겠지.”

 

 

 

“..그렇게 많이는 안 먹었거든?”

 

 

 

네네, 알겠어요-”

 

 

 

“..얼른 자기나 해. 해 뜨자마자 출발할 거니까.”

 

 

 

그래, 보초 서기 힘들면 아코 말고 나 깨워. 나 아직 괜찮아.”

 

 

 

“..그래그래.”

 

 

 

여분의 담요를 몇 개를 더 꺼내어 아이에게 덮어주며 나도 눈을 감았다.

 

 

 

피곤하지는 않지만,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서 체력을 비축해 두는 게 좋으니까. 아무래도 잠을 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내일은 부디, 광장에 도착해 제법 괜찮은 여관에서 묵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야 아이가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쉴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

 

 

 

 

새가 짹짹 지저귀는 소리에 부스스 눈을 떠 손목에 감겨 있는 검정 가죽 시계로 시간을 확인하자 아침 해가 뜨기 직전인 538.

 

 

 

부스스한 눈가를 부비며 아직도 곤히 자고 있는 아이를 흔들어 깨웠다.

 

 

 

항상 딱딱한 돌바닥에만 있어서 그런지, 익숙하게 몸을 웅크리다 눈을 뜨는 아이의 모습에 순간 지하에서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도 참 아이에게 무심했네..이렇게 담요 한 장 가져다 줄 생각도 못하고 방치하기만 하다니..

 

 

 

미안한 마음이 가슴에 와 닿으면서 아이에게 정말로 죄스럽다는 감정이 들었다. 이제부터라도 언니 노릇을 잘 해줘야 할 텐데..

 

 

 

하지만

 

 

 

지금도 달큰하게 풍겨오는 너의 체취에 입가에 고이는 이 타액은 어떤 의미인 걸까.

 

 

 

아코-일어나자.”

 

 

 

눈을 뜨자마자 익숙하게 담요를 정리하는 아이를 바라보다 여전히 쿨쿨 잘도 자는 아코를 토닥이며 겨우 깨워 담요를 정리해 가방에 넣고 나서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고블린 세계는 사실 세계랄 것도 없이 좁은 곳이니까, 아마 광장에는 금방 도착할 게 분명했다. 더군다나 속도도 이렇게 빠르니 느지막한 점심이나, 애매한 저녁때가 되어서야 여관에서 짐을 풀고 먼지로 뒤덮인 눅진한 몸을 씻어 내리며 피로를 풀고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아이가 아침에 입을 옷을 꺼내 침대 맡에 놔두고, 씻고 나온 아이의 발을 주물러 줘야지.

 

 

 

이건, 아마..내 바램뿐이겠지만..어색하고, 부끄러운 내 손길에도 부디 당황스러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

 

 

 

이런..잠깐 한눈을 판 사이 아이에게로 날아오는 돌을 미쳐 눈치 채지 못했다.

 

 

 

꽤 큰 돌덩이가 후드를 뒤집어쓰고 있는 아이의 머리를 지나 바닥 언저리에 툭 떨어져 내리며 아이의 미간이 찌푸려지는 게 눈에 보였다.

 

 

 

“..지금 뭐하자는 걸까.”

 

 

 

바닥에 떨어진 돌덩이를 발로 밟으며 후우-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참 언짢은데..내 심기를 잘도 건드려 줬다.

 

 

 

-고블린 지역에 겁도 없이 들어서다니-머리가 어떻게 된 거냐-?”

 

 

 

양쪽 절벽위에서 우루루 나타나며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수백 명의 고블린의 모습에 신고 있던 로퍼를 확인 한 뒤 발목을 천천히 돌렸다. 이럴 거면 좀 더 편한 신발을 신고 올 걸 그랬나.

 

 

 

히나 좀 부탁할게.”

 

 

 

“..죽이지는 말아라, 수배명단에 오르면 복잡해진다.”

 

 

 

그건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그냥..”

 

 

 

불구로만 만들어 줄 거니까.

 

 

 

자신만만하게 돌덩이들을 들고 우릴 겨냥하고 있는 고블린들을 향해 발을 구르며 하늘로 붕 떠올랐다.

 

 

 

우리, 잠깐 이야기 좀 하자.

 

 

 

진짜로 찢어 죽여 버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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