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러브라이브/요우리코

[요우리코]가장 따뜻한 색은 무엇일까.-1

w.여름 꽃

 

 

보글거리며 찌개가 끓어오르는 소리가 들리자, 깜깜한 어둠을 휘젓다가 느껴지는 오돌토돌한 스토브의 온도를 내리며 뚜껑 손잡이를 들어 올렸다.

 

 

 

!”

 

 

 

그러다가 냄비 뚜껑에 손가락을 데였지만, 솔직히 이제는 익숙한 일이라서 처음보다는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그저 눈썹을 찌푸리며 차가운 물에 손가락을 식힐 뿐이었다.

 

 

 

혼자 산지 3년이 넘어가지만, 이렇게 요리를 하는 건 언제나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더군다나 언제 다칠지 모르는 위험한 기구가 많은 곳이니까. 더욱 더 조심을 가하는 편인데, 요리를 할 때는 기본적으로 어딘가를 베이거나 데이고 나야 그냥저냥 먹을 만한 요리가 완성되는 편이니, 먹고 살기 위해서라면 꼭 한군데를 다쳐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초기, 이곳에 이사를 왔을 때는 자신을 안쓰럽게 보는 몇몇의 이웃 분들 덕분에 먹을 걸 많이 얻어먹었지만, 남의 친절도 불편하고 미안한 리코에게는 이런 흔한 호사조차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미안하게 느껴져 한두 번 거절을 했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에게 찾아도 오지 않는 이웃 아주머니들의 행동에 씁쓸해진 리코다.

 

 

 

안쓰러움과 동정이 아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그런 생각도 잠시, 약한 온도에서 연하게 끓어오르는 나베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작은 플라스틱 통에 담겨진 쇼유를 작은 수저로 떠 넣은 리코는 나베를 저어 맛을 보고 난 후에야 식탁에 밥을 차리기 시작했다.

 

 

 

익숙하게 칼을 씻어 칼집에 넣고, 도마는 대충 느껴지는 잔여물들을 치우고 깨끗이 씻어 식기가 모아진 곳 틈에 끼어 넣은 뒤, 플라스틱 특유의 딱딱함이 느껴지는 주걱으로 밥을 푸고 나서야 스토브를 끈 리코는 국자를 들어 조심조심 국그릇에 국을 담았다.

 

 

 

혹시라도 국물이 흐를까봐 뜨거운 열기가 올라오는 냄비위에서 국을 따르던 리코는 늘 상 하던 행동처럼 엄지손가락을 타고 흐르는 국물의 느낌과 묵직한 그릇의 무게에 식탁에 국을 올려놓고 손을 씻었다. 밥 한번 먹기 정말 힘드네..

 

 

 

잘 먹겠습니다.”

 

 

 

대충 수저와 젓가락을 가져와 식탁에 앉은 리코가, 손을 더듬어 눅진한 밥알이 만져지자 수저로 밥을 떠 우물거렸고, 식탁을 더듬어 국그릇 특유의 둔탁함이 느껴지자 국을 떠먹었다.

 

 

 

밥은 물 양을 잘못 맞춰서 질척거리고, 국은 달고 짜다. 맛있는 음식을 먹은 게 언제더라..

 

 

 

아쉬운 마음이 들었음에도 그저 묵묵히 밥을 퍼 먹던 리코는 결국 채 반도 비우지 못한 식탁에서 폭 한숨을 내쉬었다.

 

 

 

힘들다 정말..”

 

 

 

누군가가 들어주는 이는 없지만, 답답한 마음에 푹 새어나오는 말과 한숨에 입맛이 없어진 듯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난 리코가 밥그릇과 국그릇을 싱크대 안에 넣고서야 늘 벽에 붙어있는 식탁 한가운데에 위치한 물티슈 두 장을 뽑아 식탁을 닦아 낸 뒤 왼쪽 식탁 다리에 놓여 진 쓰레기통에 물티슈를 버렸다.

 

 

 

그리고는 당연하다는 듯이 몸을 돌려 싱크대 왼쪽 고리로 부착되어진 바구니 안에서 수세미를 꺼내들고 그 위 협탁에 놓여 진 퐁퐁을 한 번 꾹 눌러 짜내어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먹다 만 밥과 찌개는 싱크대에 버렸으니, 설거지를 끝내면 물에 흘러 체에 걸러질 터였다. 그러면 그 체를 탈탈 털어내 음식물 쓰레기통에 담으면 될 일이었다.

 

 

 

짱아.., 맞다..”

 

 

 

짱아는 죽었지..

 

 

 

늘 상 설거지가 끝나 갈 때쯤이면 리코는 항상 안내견인 짱아를 불러 산책을 갔었다. 할 수 있는 것도, 재능도 없는 리코에게 그나마 자유롭게 느껴지던 하루 일과였는데, 5년 동안 저를 지켜주며 열심히 일 하던 짱아는 2년 전 불량배들의 손에서 맞다가 죽어버렸다.

 

 

 

그 후의 충격 때문인지, 더 이상 안내 견을 옆에 두지 않는 리코였지만, 정이 많이 들어서인지, 이제는 완전히 가족으로 스며들어 버린 짱아를 버릇처럼 부르는 건 멈출 수가 없었다.

 

 

 

결국 이렇게 다시 혼자로 돌아왔지만.

 

 

 

차가운 물로 설거지를 해서인지 꽤 얼얼해진 손을 탈탈 턴 뒤, 익숙한 보폭으로, 머릿속으로는 숫자를 새며 걸음을 옮기는 리코이다.

 

 

 

정확히 열 두 걸음. 거실이면서도 침실인 자신의 공간에 도착한 리코는 침대 대신 조금 더 낮은 매트릭스위에 올라가 이불을 덮었다.

 

 

 

요즘 갑작스럽게 찾아온 우울증에 속이 허하다.

 

 

 

좁은 방안에 저 혼자 밖에 없어서인지 더 우울하고.

 

 

 

그래서 우울증이 찾아왔나보다. 혼자라서.

 

 

 

후우..”

 

 

 

이럴 때는 친구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저를 집밖에 두기에는 창피해 하셨던 부모님 덕분에 리코는 시계 침 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때웠고, 저처럼 조요한 아이들이 모여 있는 특수학교에서 글씨를 배웠다.

 

 

 

그러다가,

 

 

 

빗길에 운전을 하다 차가 뒤집혀 돌아가신 부모님들로 인해, 22살 어린 나이에 홀로 살아가게 된 리코는 18살에 선물 받았던 리트리버 짱아와 이곳에 왔고, 그 후 1년 동안 그럭저럭 살아가다가, 짱아까지 죽어 또 다시 혼자가 되고 말았다.

 

 

 

제 친척들은 부모님 보험금을 홀랑 빼 먹고 사라져 버리셨으니, 이제는 정말 아무도 없는 외톨이가 되어버린 리코는 국가에서 지원해 주는 작은 양의 돈과 어릴 때부터 저를 걱정한 부모님이 모아두셨던 조금의 돈에 의해 좁은 원룸으로 이사와 조용히 살 수가 있었다.

 

 

 

그 돈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 슬슬 무언가를 시작해야 할 텐데.

 

 

 

답답함에 우울증이 더 깊어지는 리코다.

 

 

 

“..답답하다..”

 

 

 

옆으로 웅크려 있던 몸을 바로 뉘이며 하루 종일 감겨 있는 눈가를 팔로 가린 리코가 꼴깍 침을 삼켜냈다.

 

 

 

내 세상은 꼭 탁한 회색 같다.

 

 

 

본 적 없는 색이지만, 그냥 느낌이 그랬다.

 

 

 

저를 위해서 헌신하기를 원하셨지만, 남에게 보이기에는 부끄러워 하셨던 어머니는 항상 색을 궁금해 하는 저에게 색을 알려주셨다.

 

 

 

그 중에서도 회색은, 비 오는 날 의도치 않게 흠뻑 맞아 젖어버린 찝찝한 색이라고 했다. 한 없이 우울하고, 가슴이 먹먹한 색

 

 

 

그때는 느끼지 못한 색이었는데, 지난 7년 동안 저를 시리게 몰아치는 색의 느낌을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저는 회색이었다.

 

 

 

혼자 남겨져 우울함을 풍겨내는 찝찝한 색 말이다.

 

 

 

그냥 확 죽어버릴까.”

 

 

 

죽으면 그나마 자유로워질 터였다. 늘 상 시달리는 가난에서, 그리고 이 외로움에서.

 

 

 

아무리 힘들어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던 생각이 문득 든 리코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바로 오른쪽에 위치한 행거에서 코트를 빼 입었다.

 

 

 

그래, 죽어버리면 되겠구나.

 

 

 

눈이 보이지 않으니까 죽기도 쉽지 않겠지만, 죽는 방법은 많았다. 누군가가 한 번도 제게 알려준 적은 없었지만, 리코는 철물점에 가서 밧줄을 살 생각이었다. 문고리에 밧줄을 묶고 목에 칭칭 감은 뒤 머리에 비닐을 뒤집어쓰고 죽을 생각이었다.

 

 

 

투박하지만 부드럽게 느껴지는 코트를 껴입고 후크까지 올린 리코는 서랍장에 넣어둔 양말 중 아무거나 꺼내 신고 몸을 일으켰다.

 

 

 

항상 양말을 살 때만 똑같은 색깔과 모양으로 한 뭉텅이로 샀으니, 아마 짝짝이는 아닐 터였다.

 

 

 

그리고는 정확히 여섯 걸음 만에 도착한 현관 앞에서 신을 신고 스틱까지 탁탁 편 리코가 문을 열었다.

 

 

 

겨울인 만큼 차갑게 불어오는 겨울바람에 몸을 웅크린 리코가 바닥을 짚을 때마다 ’ ‘하고 경쾌하게 울리는 스틱 소리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다, 익숙한 이웃의 목소리에 철물점을 물어본 뒤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이리저리 길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H마트 옆이라고 했지.’

 

 

 

H마트는 꽤 먼 곳이 아니었다. 원룸 촌이 모여진 이곳에서 마트라는 이름에 맞게 꽤나 큰 대형 마트인 H마트는 일주일에 한 번 장을 보는 리코가 자주 애용하는 곳이었다.

 

 

 

그 옆에 철물점이 있는지는 몰랐는데..

 

 

 

길을 물어물어 찾아가려 했던 리코의 생각과는 달리 다행이도 자신이 아는 곳 근처임에 표정이 밝아진 리코는 아까보다는 경쾌하게 스틱을 놀리기 시작했다.

 

 

 

’ ‘

 

 

 

드디어 죽을 수 있겠구나.

 

 

 

실례합니다.”

 

 

 

멀리 않은 거리임 만큼 금방 H마트에 도착한 리코는 친절하게 자신을 철물점까지 데려다 준 계산대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철물점 안으로 들어갔다.

 

 

 

뭐 필요 한 거 있수?”

 

 

 

그리고 걸걸한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몸을 흠칫 떨었다.

 

 

 

자신의 뒤에서 느껴지는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높은 곳에서 들리는 걸로 보아서 자신보다 키가 큰 사람임이 분명했지만, 몸에서 흘러나오는 울림통은 꽤 왜소한 사람임이 틀림없었다.

 

 

 

....밧줄이 필요해서요.”

 

 

 

밧줄? 어느 정도 길이로?”

 

 

 

준비 해 온 말을 내뱉던 리코는 당연하다는 듯 반문을 하는 할아버지의 말에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

 

 

 

길이..?

 

 

 

“...”

 

 

 

“...”

 

 

 

“...”

 

 

 

거 참..밧줄이 필요하면 길이를 알아왔어야지 길이를.”

 

 

 

“..알아보고 올게요.”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는 할아버지의 행동에 덜컥 겁을 먹은 리코가 황급히 인사를 하며 철물점을 빠져나오다..

 

 

 

!”

 

 

 

으왁!“

 

 

 

나이가 어린 듯 아이 특유의 꾀꼬리 같은 비명을 내뱉는 여자와 부딪혀 버리고 말았다.

 

 

 

아야야..”

 

 

 

, 괜찮으세요?”

 

 

 

“.., ! 죄송합니다.”

 

 

 

그리고 부딪힌 반동으로 넘어져 버린 리코는 손에서 잡히지 않는 스틱에 바닥을 더듬으며 대충 사과를 내뱉다, 거친 돌가루가 느껴지는 바닥을 휘저어도 스틱의 촉감이 느껴지지 않자 저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흘러나왔다.

 

 

 

정말, 나란 사람은 되는 것도 없구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자 정말 서러운 기분이 들었다. 목 깊숙한 곳이 메마르면서 아파오는 기분이 들었고, ‘우우하는 신음성과 함께 눈에서는 굵은 눈망울이 뚝뚝 흘러내렸다.

 

 

 

, 저기요?”

 

 

 

부딪힌 여자의 부름에도 이제는 아예 목 놓아라 우는 리코의 모습에 자신의 옆에 떨어진 스틱을 주운 여자는 여전히 바닥에 앉아 있는 리코를 안아서 일으킨 뒤에 손을 잡았다.

 

 

 

, 그만 울어요.”

 

 

 

흐으으윽, 흐읍, 크흑..”

 

 

 

, 울면 예쁜 얼굴 못생겨져요.”

 

 

 

으윽! ,, 원래 못,,,흐윽..생겼어요.”

 

 

 

에이, 엄청 예쁜 데요 뭘. 그건 그렇고 이거 찾은 거죠?”

 

 

 

바닥을 더듬어 새까매지고 생체기가 난 손위에 스틱을 올려준 여자가 눈물과 콧물을 흘리는 리코의 얼굴을 손등으로 닦아주며 허전하게 비어있는 리코의 오른손을 꽉 움켜잡았다.

 

 

 

울지 말고, 집에 가요. 데려다 줄게요. 상처도 치료해주고.”

 

 

 

흐윽..우리 집..?”

 

 

 

, 당신 집이요.”

 

 

 

크읍, 그럼..H마트가 어느 쪽이에요오?”

 

 

 

줄줄 흐르는 콧물에 주머니에서 티슈를 꺼내든 여자가 콧물을 닦아주며 해남슈퍼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넘어지면서 방향 감각을 잃은 리코가 길을 찾으러 한 말이지만, 여자는 이미 리코를 이끌며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 ‘제 오른 손을 꼭 잡고 자신을 이끄는 여자의 행동에 왼손으로 스틱을 집은 리코는 다친 손바닥에 뜨거운 여자의 살갗이 닿자 따갑게 아려왔지만, 오랜만에 느껴지는 따스한 사람의 손길을 놓고 싶지는 않았다.

 

 

 

왠지 이 손을 놓아버리면, 정말 죽고만 싶을 것 같아서.

 

 

 

 

 

 

 

 

이 글은 2016년 말에 적었던 글입니다. 덕질을 하기 전이었던 때라서 한국적 요소가 강한 글이니 양해 부탁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