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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드림

[사요히나]별의 다이어리-14

w.여름 꽃

 

 

 

어느 정도 혈기를 띄우고 고른 숨을 내쉬는 히나의 모습에 후-깊은 한숨을 내뱉은 사요는 입가에 묻은 피를 손등으로 대충 훔쳐냈다. 아직도 파리한 얼굴이지만 그래도..아까보다는..

 

 

 

다행이다.

 

 

 

조금은 편안해진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문득 든 생각이었다. 이때까지 겁이라곤 먹어 본 적 없는 자신이었는데, 순간 네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니까 겁이 덜컥 났다. 무서웠어.. 부드러운 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꾸욱, 힘을 써 피곤이 쌓인 뻐근한 눈 사이를 꾸욱 눌렀다. 아픈데 시원하고 시원한데 아프다. 이런다고 피곤이 풀릴 리가 없을 텐데..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이 행동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반복되고 또 반복된다. 그러다가-또 이런 실수를 저질러 너를 잃을 것 같다.

 

 

 

내 아이야, 하나 뿐인 동생아. 내가 다 잘못했으니까 얼른 일어나주렴.

 

 

 

하얀 니트 위로 분홍빛으로 물들인 피를 툭툭 털어내며 아이의 위에 있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발작은 멈췄으니 이제 지켜봐야 한다. 더 약해졌을지, 더 강해졌을지 그건 제게 별로 중요한 사항은 아니었지만, 혹시라도 아이가 많이 힘들어할까봐 그게 더 걱정이 돼서 한시도 떨어 질 수 없게, 내게 중요한 건 그거였다. 내가 엎지른 물이니, 내가 닦아야 하고, 내가 저지른 실수이니 내가 만회해야 한다. 내가 죄인이니까.

 

 

 

“....”

 

 

 

이런 내 실수로 여행이 지체가 되어버렸다. 아버지도 슬슬 아이들을 풀기 시작할 것이다. 2-3일의 여유 기간을 주어 느긋하게 지켜보다가, 거부를 하며 순식간에 잡아채 죽여 버리는 아버지의 취미는 첫째인 저에게도 필히 작용 될 것이었다. 죽이지는 않더라도 저를 겁먹게 할 것이었다. 그리고..너를 내 눈앞에서 죽이겠지. 천천히 아주 고통스럽게 그렇게 내가 저지른 반항심을 잠재울 것이다. 그럴 게 분명했다. 짧은 생이지만, 이때까지 봐온 아버지는 그랬다.

 

 

 

잘못을 하면 사요를 하지 않았고 그걸 바로잡기를 원하시는 분이셨다. 말이 안 통하면 가장 소중한 것들을 빼앗으셨던 것처럼.

 

 

 

이야기가 한 번 꼬리를 물면 해서는 안 될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리고, 점점 심장부터 옥죄어 오는 이 통증이 이제는 두통을 일으킬 듯 지끈거리기 까지 하다. 리사는 분명 뭔가 대책을 세워놨겠지. 하지만, 너무 의지하기에는 미안한 감정이 있다. 이건 분명 내가 생각한 것인데..관계없는 친구들 까지 끌어들인 걸까. 나만 없었어도 지금 쯤 독서를 하거나, 다른 뱀파이어들과 수다를 떨며 재밌는 생활을 하고 있을 아이들인데.

 

 

 

결국은 모든 게 내 잘못이다.

 

 

 

그럼에도 되돌아가기엔 너무 늦었다. 돌아가지도 않을 테지만.

 

 

 

-깊은 숨을 내쉬며 밖으로 나갔다. 뭔가 대비책을 세워놔야 한다. 그러려면, 짐이 들어있는 가방을 가지고 와야 하고, 가방은 비상사태를 대비해 이것저것 여분으로 더 챙겨놔 물건이 많은 리사의 손에 있다.

 

 

 

포션도 몇 개 사용했으니, 만약의 사태를 위해 더 만들어 놔야 하고, 아이가 일어나면 마실 피도 구해 와야 한다. 처음엔 거부 반응을 일으킬 테고, 많이 역해 할 테지만, 가장 빨리 체력을 회복시키는 방법은 역시나 혈액이다.

 

 

 

리사한테 여분의 혈액이 있을 테지만, 거기까지는 손 벌리기 싫으니, 인간 세계에 갔다 와야겠지.

 

 

 

정신없이 짐을 챙기는 와중에도 아마, 소화서를 몇 장 구비해 놨을 것이다. 그걸 사용해 인간 세계에 가서 혈액을 구해 온 뒤, 귀환서를 사용해 여기에 오면 될 것이었다.

 

 

 

다만, 짧은 시간 안에, 완벽하게 흔적도 없이. 아무도 모르게.

 

 

 

완벽하게. 이 일을 끝내야 한다.

 

 

 

리사.”

 

 

 

히나는 괜찮아?”

 

 

 

너는?”

 

 

 

아이들이 있을 방을 찾아가 문을 열자, .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 순간 정적이 일었지만, 내게 필요한 건 가방이었으니, 침대 쪽으로 다가가 가방을 집어 들고 몸을 일으켰다.

 

 

 

난 멀쩡하고, 히나는..자고 있어. 언제 일어날지는 모르겠다만..우선 급한 불은 껐으니..”

 

 

 

그래..다행이다.”

 

 

 

너도 상태가 안 좋아 보여, 얼른 가서 쉬어.”

 

 

 

..”

 

 

 

아이가 있을 방안으로 돌아와 가방을 열어 사이즈에 맞는 남색 맨투맨을 꺼내 갈아입은 뒤 포션과 약재들을 꺼내 이것저것 확인 하는 것을 끝으로 몸을 일으켰다.

 

 

 

두 장.

 

소환서 두 장과 귀환서 한 장.

 

 

 

다행히 잘 챙겨왔구나.

 

 

 

곤히 잠들어 있는 아이의 옆에서 웅크려 있다 일으킨 몸을 숙여 아이의 볼을 쓸어내렸다. 금방 갔다 올게. 조금만 기다려.

 

 

 

찌익

 

 

 

반으로 찢어 흩날리는 소환서를 끝으로 핏, 시야가 검게 변했다. 그렇게 몇 초간 어둠속에 있었을까..쏴아아 울려 퍼지는 물소리에 정신을 차리니, 처음으로 일을 맡았을 때 찾아왔던 비린내가 비릿하게 퍼지던 선착장이었다.

 

 

 

“...”

 

 

 

냄새 제거 포션을 마시고 오길 잘했지..짜디 짠 바다 냄새에서도 내 향은 지워지지 않았을 테니까.

 

 

 

추운 바닷바람에 펄럭이는 맨투맨의 소매를 따라 슥 길게 자라난 손톱을 숨기며 몸을 움직였다. 여유 부릴 시간이 없다.

 

 

 

 

-

 

 

 

 

,투둑

 

 

 

시체에서 쏟아지는 피들이 하얀 대야 아래로 가득히 흘러내린다. 인간 녀석을 잡은 건 좋았는데..

 

 

 

망했네..”

 

 

 

흔적을 없애야 할 텐데..방안 가득 흩뿌려져 있는 피와 벽지에 튀겨 있는 혈흔 자국이 딱 봐도 큰일이 났다는 걸 예고하고 있다.

 

 

 

더군다나..

 

 

 

피를 담을 팩이나 병도 없어서 이렇게 시체를 거꾸로 매달아 났다. 피를 쏟지 않고 안전하게 죽일 방법은 많았지만, 죽이고 나서 돌아갈 귀한서는 한 장 밖에 없었다. 아무리 죽은 상태라도 무게가 나가고 혈액이 울컥거리는 시체이니 귀환서는 필히 두 장이 필요할 터였다.

 

 

 

또옥

 

 

 

울컥거리며 흘러나오는 피들이 목을 지나고 얼굴을 지나쳐 머리카락을 밧줄 삼아 주르륵 내려가는 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눈을 뒤집어 까져 있는 시체의 눈을 감겨 줬다.

 

 

 

미안해요.”

 

 

 

그래도..나한테 정말 소중한 아이에게 필요한 거예요.

 

 

 

15분 전까지만 해도 이 좁은 방안에서 책을 보며 음악을 듣던 여자는, 갑작스러운 저의 침입에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뒤에서 잡아채 내리누르던 목에서의 떨림이 아직도 손끝을 파르르 떨리고 적신다. 차라리 당신이 남자였으면 조금이라도 죄책감이 덜했을 텐데..말도 안 되는 혼잣말을 위안으로 삼으며 뒤적거린 방안에서는 마시다 만 2L생수병을 찾아내 남아있는 물들은 미련 없이 싱크대에 부어버렸다. 뱀파이어에겐 물 따위 있으나 마나 한 거니까.

 

 

 

그리고는 부엌에 있는 컵을 가져와 조심조심 혈액들을 옮겨 담고 나서야 아직도 뚝뚝 새빨간 피를 흘리고 있는 여자를 고르게 눕혀준 뒤 할짝, 손바닥에 말라붙어 있는 피를 핥아냈다.

 

 

 

이제 돌아가야지.

 

 

 

지금 당장 여기서 귀환서를 찢고 싶지만, 최대한 나란 존재의 흔적이 없어야 한다. 귀환서든 소환서든 주술이 담겨 있는 종이들은 찢으면 재로 변해 사라지지만, 아버지가 풀어놓은 녀석들은 그 재 하나로도 나를 찾아낼 정도로 비상적인 아이들이니 이곳에서 귀환서를 찢는 건 필히 옳은 행동이 아니었다.

 

 

 

휘이잉열어 논 베란다 창문 사이로 흩날리는 바람에 커튼이 흩날리고 방안 가득 메여있는 피 냄새들이 바다냄새와 섞여 밖으로 빠져나간다. 그 틈새로 잽싸게 몸을 날려 방을 빠져나왔고, 최고의 속도라 자부 할 수 있는 속도로 꽤나 멀리 있는 바닷가를 향해 달려갔고, 물이 흥건히 고여 있는 바닷가가 보이기 무섭게 풍덩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고 나서야 손끝에 있는 종이가 채 젖기 전에 찌익-.

 

 

 

찢고 날려버렸다.

 

 

 

됐다. 이제 내 냄새도, 그 여자의 피 냄새도 모든 게 지워졌을 것이다. 바다는 넓었고, 난 거기서 흙 한 줌도 채 되지 않은 작은 존재이니 녀석들이 피 냄새를 따라 이곳에 와도 건질 게 하나도 없을 것이다.

 

 

 

-초가 꺼진 듯 어두워지는 시야에 눈을 감은 사요는 꼬옥 생수통을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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