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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드림

[사요히나]별의 다이어리-15

W.여름 꽃

 

 

주르륵

 

 

 

치덕치덕 소금 내가 가득한 바닷물로 질퍽한 옷의 물기를 비틀어 대충 짜낸 사요는 옅게 식었지만 아직도 따뜻하게 느껴지는 생수병을 집어 들어 히나가 누워 있을 방문을 열었다.

 

 

 

“..-언니.”

 

 

 

“...”

 

 

 

아직까지 누워 있을 줄 알았는데..그런 사요의 예상과는 달리 나른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는 히나의 모습에 사요는 터벅터벅 히나가 걸터앉아 있는 침대에 다가간 후 둥그렇게 말려 있는 이불 위에 생수병을 올려 논 뒤에야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히나와 눈을 맞췄다.

 

 

 

언제 바뀐 건지 더 진해진 머리색과 예전과는 다르게 더 뚜렷해진 푸른 눈동자. 더군다나 히나 특유의 맑은 분위기도 뭔가 오묘하게 바뀌어 있었다. 예전에는 청량한 물 같았다면 지금은 마치..끈적한 체리 콕처럼. 정말..말로 형용할 수는 없는 느낌..이랄까.

 

 

 

..”

 

 

 

?”

 

 

 

“..괜찮은 거야?”

 

 

 

아아..물론. 누구 덕분에 예전보다는 더 강해진 것 같은 느낌도 들어.”

 

 

 

“...”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정말 쓸모없는 호프였는데. 지금은 새로 태어난 기분이야-”

 

 

 

“...”

 

 

 

언니.”

 

 

 

뒷말을 느릿하게 뱉어내며 여유롭게 미소를 짓는 히나의 모습에 아직도 뚝뚝 바닥에 떨어질 만큼 축축한 옷을 갈아입을 생각도 못한 체 히나를 바라보는 사요의 눈가가 동요라도 하듯이 흔들 거렸다. 뭔가..문제가 생겼다. 정말로 큰 문제가..

 

 

 

“...”

 

 

 

“...”

 

 

 

그래도 뭐라 말을 할 수도 없는 게..아이가 저렇게 변한 건 다 나 때문이니까. 내가 그때 욕구를 절제할 수만 있었더라면. 아니. 아이의 물지만 않았더라면. 넌 내가 생각하는 네 특유의 순수함 모습만을 가지고 날 바라보고 있을 터였다. 그러니 아이가 저렇게 된 건 내 탓이다. 그러니 이런 내가 너에게 무슨 말을 할 수가 있겠니.

 

 

 

언니.”

 

 

 

“..

 

 

 

이제 그만 원래 자리로 돌아가.”

 

 

 

“...”

 

 

 

어차피 잡힐 거야. 그리고 난 죽겠지. 언니, 그리고 언니의 친구들 마지막으로 나. 이렇게 무리지어 다니면 잡히기도 쉽고 죽기도 더 쉬워. 그러니까. 이만 돌아가.”

 

 

 

“..그럼 너 죽어.”

 

 

 

알고 있어. 태어나서부터 살기를 포기한 몸. 지금 죽어봤자 별 의미는 없어. 그냥 내가 생각한 것보다 조금 더 오래 살아 있다가 간 거니까. 오히려 만족해야 한다고 할까?”

 

 

 

“...”

 

 

 

그런데 말이야-솔직히 그건 약해 빠지기만 했던 과거의 내가 했던 생각이고-”

 

 

 

끝말을 늘이며 힐끗 피가 가득 찬 생수통을 바라보던 히나가 스륵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은 뒤에야 다시 말을 잇기 시작했다.

 

 

 

지금은 살고 싶어. 내가 생각한 삶보다. 그리고 언니가 생각한 삶보다 더 오래. 하지만 말이야. 지금 이 상태론 안 돼.”

 

 

 

그래서 도와주겠다는 거잖아.”

 

 

 

아니. 언니가 날 도와줄 수 있는 건. 날 보내주는 거야. 혼자 도망칠 수 있도록.”

 

 

 

히나.”

 

 

 

그리고. 이미 오고 있어. 아버지의 추격자들.”

 

 

 

“....설마..!”

 

 

 

-당신을 그토록 아끼시는 그 분의 떨거지들 말이야. 내가 그랬거든. 눈을 뜨자마자 밖으로 나와 아무 고블린이나 붙잡고 말했어. 그 사람들이 너흴 다 생매장 하는 것보다는 우리가 있는 장소까지 안내해서 그나마 목숨이라도 연명하라고 말이야. 물론-조금 겁도 줬지.”

 

 

 

!!!!!”

 

 

 

그러니까. 내가 더 살기 바란다면 도망가게 보내 줘.”

 

지금 당장

 

 

 

“...”

 

 

 

두 주먹을 꽉 쥐고 바르르 떨고 있는 사요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가깝게 끌어당긴 히나는 사요의 부드러운 입술에 살며시 입을 맞춘 뒤에야 여유 있는 웃음을 지어보였다.

 

 

 

언니도 알잖아. 나 그렇게 쉽게 잡힐 위인 아닌 거. 언니 동생이니까 언니가 잘 알고 있잖아.

 

 

 

그냥 우리 둘만이라도 같이 가면 안 되는 거니?”

 

 

 

“....”

 

 

 

눈물이 나지는 않지만 그래도 뱀파이어도 감정을 가지고 있긴 한 건지 무겁게 가라앉다 못해 조금씩 울림이 느껴지는 목소리를 힘겹게 내뱉은 사요의 말에 망설이듯 입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던 히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거절의 의사를 명백히 내뱉었다.

 

 

 

그래..”

 

 

 

이제 곧 올 거야. 나 진짜 가야해 언니.”

 

 

 

이거 줄게. 네가 가고 싶은 장소를 생각해. 아니. 천계로 가. 그곳에 가서 츠구미라는 천사에게 도움을 청해 내 이름이나 리사의 이름을 말하면 잘 알아들을 테니까. 들키기 전까지 거기에 숨어있어.”

 

 

 

..”

 

 

 

..꼭 무슨 일이 있어도..네가 어디에 있더라도 내가 찾아낼 테니까 그때까지 살아만 있어. 알았지?”

 

 

 

그래..꼭 찾아내. 그때까지 살아있을 테니까.”

 

 

 

“...”

 

 

 

안녕-”

 

 

 

“..안녕

 

 

 

몇 백 년. 길면 몇 천 년은 못 볼 거란 생각에 히나의 얼굴을 붙잡아 입술을 맞댄 사요는 자연스럽게 히나의 입 속을 파고들며 부드럽게 혀를 섞었다. 질척거리며 따뜻하게 얽히는 혀의 느낌에 마음이 왜 이리도 따끔 거리는 지..심장이 울컥거리며 피를 토하는 느낌이 드는 사요였다.

 

 

 

..”

 

 

 

또 봐..”

 

 

 

..”

 

 

 

알려준 적이 없었음에도 자연스럽게 소환서를 찢고 사라지는 히나를 보며 살풋 서글픈 미소를 지은 사요는 아직도 축축하게 젖어있는 옷을 갈아입을 생각이 없는지 무겁게 늘어지는 옷을 그대로 입은 체 돌아가기 위해 가방을 들고는 문을 열었다.

 

 

 

“...”

 

 

 

“..-”

 

 

 

..미안하다. 내가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어버려서..”

 

 

 

괜찮아. 이게 운명이라면 어쩔 수 없지..”

 

 

 

“..그 아이는 떠난거냐-?”

 

 

 

..당신도 참 고마웠어. 우리한테 호의를 베풀어 줘서.”

 

 

 

너도 우리를 살려줬으니 당연한 거다-.”

 

 

 

그래..지금 돌아가면 최대한 해가 안 가게 힘 써볼 테니까. 다시 만날 그 날까지 잘 지내고 있어.”

 

 

 

걱정마라-! 우리가 힘은 약하지-만 대신에 목숨만큼은 끈질기다아 킁.”

 

 

 

“..그래. 그럼 이만 가 볼게.”

 

 

 

잘 가라-킁 배웅은 안 하겠다.”

 

 

 

그래.”

 

 

 

사요가 돌아오기 전 히나가 미리 언질이라도 해둔 건지 당연하게 사요를 위로하고 보내주는 깜꿍의 모습에 아이가 이렇게나 철저 했나란 생각을 하며 리사와 아코가 쉬고 있을 방으로 돌아간 사요는 무뚝뚝하게 돌아가자는 말을 내뱉은 뒤에 둘이 무슨 말을 하던 그냥 귀를 닫아버렸다.

 

 

 

이미 이렇게 되어버린 일. 돌이킬 수도 그렇다고 되돌릴 수도 없다. 그러니 우리는 원래 있던 곳에 돌아가야 할 뿐. 그게 당연한 이치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는 달리 순식간에 피로가 쌓인 듯 욱신거리는 몸은 이별의 상처가 꽤나 컸나 보다.

 

 

 

“...”

 

 

 

아니면..이렇게 눈물이 나올 수가 없잖아.

 

 

 

뱀파이어는 감정에 무덤덤한데

 

 

 

“...”

 

 

 

그저 아코와 리사가 눈치 채지 못 하게 몸을 돌리고 벽을 바라보고 있던 사요는 뿌옇게 흐려지는 시야와 동시에 툭 눈가에서 떨어지는 축축한 액체에 크게 소리를 지르고 싶은 마음을 꾹 억눌리며 천천히 숨을 몰아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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