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뱅드림

[사요히나]별의 다이어리-17

w.여름 꽃

 

 

 

으으..”

 

 

 

눈을 뜨자마자 나온 대답은 이거였다. 대답이라기보다는 고통이 가득한 신음성이지만..

 

 

뜨거운 용암을 부은 것처럼 후끈하게 달아오른 몸뚱아리와 숨을 내쉴 때마다 꿀렁꿀렁몸 속의 모든 혈액이 용솟음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건 목가에 남아 있는 이빨자국들과 움푹 파인 오른쪽 어깻죽지였다. 그로 인해 손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누운 체 고통에 절로 튀어나오는 신음을 내뱉던 히나는 떠진 눈으로 용케 주의를 훑어보며 정신을 차리려 용을 쓸 뿐.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게 도통 없었다.

 

 

그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역한 자신의 피 냄새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지푸라기의 씁씁한 향기와 지독한 생명체의 털 냄새 뿐. 일반 인간이 맡았을 때는 인의적인 과일향이었겠다만, 후각이 예민한 히나에게서는 이 인의적인 향은 짐승 냄새를 가리려는 그저 흔한 싸구려 향이었다. 물론..늑대인간만큼 예민한 후각도..자신의 언니처럼 완벽한 혈족을 자랑하는 뱀파이어처럼 대단한 치유력을 가지고 있는 편도 아니지만 말이다.

 

 

그저 인간보다는 조금 더 위일 뿐이다. 치유력도, 후각도.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그저 이렇게 누워 끙끙 앓고 있을 뿐이다. 만약 내가 언니였다면..이런 상처 따위 순식간에 나아서 흔적도 없이 늑대의 시야에서 사라졌겠지. 아니, 애초부터 질 일이 있었을까나..자신처럼 그 인의적인 향에 이끌려 늑대의 무리 안에 들어가게 될 일도 없었을 터였고, 만약 그 쪽에서 시비를 걸어온다고 했어도, 늑대 따위는 순식간에 휩쓸어 버렸을 사람이었다. 그 특유의 순수한 생김사와는 다르게 날카로운 눈으로 늑대의 심장을 꿰뚫었겠지. 분명 그런 사람이었다. 지금도 인위적으로 맡아지는..역겨운 향에..사실..역겹다기 보다는 향기롭다가 맞겠지만..그 때문에 이런 고생을 하고 있는 히나에게는 역겨운 향이라고 하기에 충분했다. 도저히 치유될 것 같지 않는 상처에도 불구하고 맡아지는 인의적인 향에 다시금 숨을 들이마시며 천천히 내뱉던 히나는 내심 이 향이 마취제라도 된 듯 한기분이 들었다. 아파서 그런 건지, 미쳐서 그런 건지 끈끈한 고통 속에서 눈이 감기는 기분이었다. 아니, 피가 모자라서 그런 걸까나.

 

 

콤콤한 마른풀 위에서 이런 저런 잡생각을 하며 힘겹게 힘을 줘 몸을 일으키려던 히나는 부르르 떨리는 손가락과 함께 뜨거운 게 흘러내리는 어깨에 다시금 힘을 빼고는 눈을 감았다.

 

 

 

그냥 죽어버릴까.

 

 

 

도망 다니는 것도 20년이 지났다. 제대로 된 큰돈도 없이 알지도 못하는 세계들을 돌아다니길 20. 책에서만 보던 엘프들을 만나봤고, 신생 뱀파이어인 저에게 뭐가 필요 했던 건지 끊임없이 무기를 들이대며 협박을 하던 못된 트롤들도 만났었다. 그 외에도 악대감을 들어내며 내쫒기기를..20. 지금도 충분히 신생 뱀파이어인 히나에게서의 20년 전은 이제 막 태어나 학습을 하기 시작했던 인간들의 아이와 다름이 없던 나이었으니, 그만큼 상처도 많이 받고, 인공적인 햇볕이 쏟아지는 밝은 빛을 피해 외진 골목에 숨어 해가 질 때까지 펑펑 울 때가 많았다. 구원의 손길을 내밀고, 저를 돌봐주던 한 천사는..아름답고 순백하던 겉모습과는 다르게 2년이 넘어가던 해에 히나를 상품으로 뒷거래상과 거래를 하다 걸린 일도 있었다. 수많은 금화가 들어있던 주머니를 짤랑 거리며 챙기는 모습에 겁을 먹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로프를 쓴 채로 냅다 도망을 쳤었지..그로 인해 언니가 준 짐 가방을 챙길 시간도 없었다. 그저, 아침에 움직이지 못하는 히나였기에 안심을 하고 거래를 한 천사 덕분에 느슨한 감시 틈으로 최대한 해에 닿지 않도록 꽁꽁 둘러싼 채로 움직여 살 수 있었다.

 

 

 

그렇게-

 

 

그런 거지같은 행색으로.

 

 

상처 받은 마음으로.

 

 

도착한 곳이 이곳이다.

 

 

눈을 감기 직전에는 드디어 죽는 줄 알고 내심 좋아했는데..

 

 

그러면서도 무서웠다.

 

 

막상 눈을 뜬 지금은 왜 죽지 못했는지 한탄스러울 뿐이지만..

 

 

감겨 있는 눈 사이로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언니가 보고 싶다. 내가 이제 누군가를 못 믿을 만큼 상처를 받았어도..언니만큼은 믿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니까..나를 포기하지 말아줬으면...찾아줬으면..그러면 좋겠는데..

 

 

다시금 이뤄지지 않을 바램을 가득 담아 혀를 웅얼거리며 훅-젖은 숨을 내뱉은 히나는 이제는 반쯤 포기한 심장을 다시 다 잡으며 쿨럭-숨을 내뱉었다.

 

 

침을 삼키면 목가가 꿈틀, 울렁거려서 목이 아프고..눈물을 흘리면, 헛기침이 나왔다.

 

 

 

“...”

 

 

 

그리고-

 

 

그런 히나의 모습을 문가에 위치한 의자에 앉아, 그저 물끄러미 아이를 바라보던 늑대인간 또한 묘하게 말을 걸 수 없는 히나의 분위기에 그저 입을 꾹 다물고는 쉭쉭-조용히 들키지 않도록 숨만 내쉴 뿐이었다.

 

 

처음.

 

 

자신이 지휘하던 무리 안에 겁도 없이 침입한 달달한 향기에 호기심을 가진 것도 잠시. 얼마 안 있어 슬금슬금 모습을 드러낸 어린 뱀파이어의 모습에 픽-헛웃음이 새어나온 것도 잠시였다.

 

 

때가 타고 낡아 빠진 회색 맨투맨과 날카로운 것에 베인 듯 찢어진 검정색의 슬렉스와 밑창이 닳아진 인간 세계의 하얀색 운동화는 누군가에게 쫒기고 있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아무리 밑바닥인 뱀파이어더라도 유독 다른 사람에게는 지기 싫어하는 모습 때문인지, 빛을 내서라도 비싼 옷을 입고 장식을 하는 게 그 녀석들의 특성이었다. 이렇게..더러운 모습으로 돌아다닐 녀석들이 아니니까.

 

 

솔직히-

 

 

불쌍하니까 그냥 보내줄까.‘ 라고 튀어나온 하얀 송곳니를 혀로 쓸며 생각에 빠진 것도 잠시. 불어오는 바람과 발달된 후각 사이로 뿜어져 나온 어린 뱀파이어의 체향은. 가지고 싶을 정도로 탐나는 순수의 향이었다.

 

 

가지고 싶은 탁한 탐욕의 향과 함께 뒤섞인 순수의 향.

 

 

그랬기에 달려들려던 떨거지 녀석들을 밀치고 먼저 달려든 거였다. 옷이 더럽든, 몰골이 퀭하던 그 딴 거는 상관 하지 않고 한 입 베어 물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물었다.

 

 

뜯겨져 입 안 가득 들어오는 살점 사이로 비릿하면서도 달달한 피가 소스마냥 입안을 데우고는 으드득, 고기의 풍미를 살려줬다.

 

 

날카로운 치아 사이로 조각조각 난 살덩이를 꿀꺽.

 

 

음미하고 삼킨 결과 쩝. 입맛을 다신 늑대인간은.

 

 

붉은 흔적을 잔뜩 남기고 도망치는 어린 뱀파이어의 뒷 꽁무니를 느긋하게 쫒으며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나중에 비상식량으로 써 먹을 수 있으니까.

 

 

그런 생각으로 느긋하게 쫒아갔던 늑대인간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장롱 안에서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기어 나온 어린 뱀파이어의 말에 죽이는 건 미루자고 마음먹었다.

 

 

 

“20년 전부터 항상 혼자였어요.”

 

 

 

외로운 사람은. 외로운 사람을 알아본다고 했으니까.

 

 

20.

 

 

겉보기에도 어리고 순박해 보이는 뱀파이어가 20년이나 혼자 떨어져 있었다는 건. 지독히도 괴로웠을 터였다.

 

 

자신도..5년 전 반려자가 죽고 나서 얼마나 괴로워하고, 외로워했던가.

 

 

내심 아이의 마음이 이해가 가다가도.

 

 

점점 줄어드는 아이의 심장 박동소리에 이대로 먹고 싶은 생각도 드는 늑대인간이었다.

 

 

결국은 울며 겨자 먹기로 늘 목가에 차고 다녔던 다니엘의 핏 조각을 아이에게 먹였지만..어떻게 얻은 보물인데..이걸 이렇게 줘 버렸을까..하고 조금은 편해진 얼굴로 숨을 내쉬는 뱀파이어를 바라보며 한탄을 하던 늑대인간이다.

 

 

..

 

 

눈을 뜨자마자 다시금 눈물을 흘리는 뱀파이어의 모습에 다니엘이건, 미타엘이건 그딴 건 개나 줘버리라는 생각이 들어버렸지만..

 

 

조상 대대로 강인함이 상징이었던 늑대인간은 눈물을 흘릴 줄 알았음에도 울지 않았다. 그게 철칙이었다. 그런 늑대 인간과는 반대로 뱀파이어는 눈물 따위는 흘리지 못하는 줄 알았다.

 

 

늘 마주쳐도 으르렁거리기 바빴던 녀석들이었고, 관심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저 조용히 거친 숨만 내쉬며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내심 약해지는 마음과 더불어 저도 울고 싶어지는 기분이 드는 늑대인간이었다.

 

'뱅드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요히나]조각 픽-1  (0) 2018.05.15
[사요히나]별의 다이어리 - 18  (2) 2017.10.28
[사요히나]별의 다이어리-16  (0) 2017.09.10
[사요히나]별의 다이어리-15  (0) 2017.09.03
[사요히나]별의 다이어리-14  (0) 2017.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