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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드림

[사요히나]조각 픽-1

w.윤 서(무관심)

 

방 안 가득 퍼지는 진득한 향수의 향에 머리가 아파오는 기분이었다. -향기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닌가. 아마도 옆방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누군가로 인해서겠지. 아니, 누군가도 아니네. 우리는 가족이니까. 이른 아침부터 이렇게 늦은 저녁까지 쉬지도 않고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 저 사람은. 우리 언니는. 내게는 참으로 모진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미워할 수가 없는 사람. 난 언니로 인해 살아갈 수 있는 작은 사람이니까. 난 언니를 미워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나한테 관심조차 없는 언니를 위해서 독한 향을 맡아가며 노력하고 있잖아.

 

하지만 이마저도 전부 무마되고 말겠지. 아무리 노력해도 날 미워하는 언니는 늘 웃고 있는 내게 하나하나 비수를 꽂는 사람이었다. 간혹 상종조차 해주지 않고 무시하는 일이 태반이었지만. 지나치며 숫하게 보여주는 그 혐오 가득한 눈동자는 언제나. 언제나 내 심장에 검은색 암흑 덩어리들을 칭칭 감아 숨조차 쉴 수 없도록 만들었다.

 

난 언제나 혼자인데.

집에서 조차 숨을 쉴 수가 없다.

 

그나마 학교 안 좁은 공간에서의 동아리 실이 오히려 내 집인 것처럼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때가 많았지만. 이내 그 마저도 아이들의 놀림 가득한 킥킥 거리는 웃음소리에 와장창 깨지는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그저 복도를 지나쳐 걸어가는 그 활발한 발걸음 소리조차. 넌 이런 행복조차 느낄 자격이 없어. 라고 일침을 가하는 것처럼 혼자서 양심이 찔려서 그러는 거일 수도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그저 눈치가 없는 척. 이해하지 못하는 척. 나를 숨기면서. 사실은 알고 있었다. 아이들이 날 피하는 이유를. 왜 다른 사람들은 쉬운 것들조차 간단하게 해내지 못하는 지를. 사실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난 천재니까. 그래서 그 눈동자 속에 담긴 혐오 사이로 느껴지는 열등감조차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늘 회피하고, 무마시키고. 또 모진 소리를 들어 심장이 조각나고. 그럼에도 오히려 여기서 멈춰서 참 다행이라고 그렇게 생각하겠지.

 

난 겁쟁이니까.

 

하지만.

 

요즘 언니가 달라졌다. 늘 머뭇거리면서도 나와 한 마디를 더 하려는 모습이. 혐오감이 조금씩 수그러들고 있는 그 눈빛이. 언니가 달라졌다는 걸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어서. 오히려 그게 더 무서워지고 있었다. 난 언제나 그 자리 그대로인데. 언니는 변해가고 있었다. 내가 쉽게 언니를 따라 잡아 앞서 추월해 간 것처럼. 어느 샌가 나보다 더 성장하여 날 지나치는 언니의 모습이 너무 무서워서. 덜컥 겁을 집어먹고 말아버린 난. 그럼에도 이때까지 한 모든 것들을 무너트릴 수조차 없어서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웃으며 언니를 따라다니고. 밤에는 이유 없는 무서움과 공포에 빠져 덜덜 떨다 잠들기가 일쑤였다. 나 혼자 멈춰 있기는 싫어. 다시 언니와 같이 걷고 싶어. 그럼에도 언니처럼 변할 수가 없어서. 내 우상이 점차 다른 이에게도 우상이 되어가고 있다는 게 너무나도 싫어서. 어쩔 수가 없어.

 

언니는 요즘 밴드보다는 다른 무언가에 빠져 헤어 나올 수가 없는 상태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는 내가 한 번에 알아챌 수 있을 만큼. 언니는 사랑에 빠져 있었다. 언니는-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밤색 머리. 어리숙한 표정과 겁 많은 눈동자. 그럼에도 당찬 그녀를 언니는 좋아하고 있었다. 악기를 연주하기 보다는 메신저를 주고받는 저녁과. 자상함이 듬뿍 담긴 목소리가 통과되어 들려오는 좁은 내 방안은. 오히려 더 겁을 집어먹게 해주기에는 충분한 조건이었다. 난 오직 언니 한 명 뿐인데. 난 다른 이를 사랑할 수가 없었다. 언니처럼 할 수가 없어.

 

점차 마음이 피폐해져 가고 있었다. 지금도. -난 언니를 위해서 무언가를 하고 있잖아. 그래도 채워지지가 않아서 마음이 아파.